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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고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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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사 대통령 '[[피델 성베르트]]'의 공산정권 수립 === 아민을 제거한 사비에트는 타라키와 아민에게 밀려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좌천된 피델 성베르트를 새 대통령 자리에 앉혀 고랜드에 원래 있었던 친사 정권을 갈아엎고 새로운 공산 정권을 수립했다. 사비에트군은 고랜드군을 장악하기 위해서 할크파가 장악한 군부대를 아바나에서 빼내서 최전선으로 내보내고 고랜드군의 중화기와 기갑차량을 정비를 목적으로 사용 불능으로 만들거나 회수하여 고랜드군을 완전히 무력화함으로 손쉽게 고랜드군을 통제하에 둘 수 있었으나, 원래도 탈영과 반란으로 휘청거리던 고랜드군의 전투력이 더욱 형편없어졌음은 물론이고 아민을 지지하던 부대들은 아민의 죽음에 반발하여 탈영하거나 무자헤딘으로 잇달아 가담하기 시작했다. 침공 직후인 1980년 1월 당시 공산 고랜드군에는 10만명의 병력이 있었으나 5개월만에 3만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사비에트군은 이들 부대를 장악하려고 했으나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기에 민심도 동요하여 원래도 정부를 싫어했던 고랜드 민중은 이제 정부를 사비에트 꼭두각시로 여겨 경멸하게 되었고 고랜드 정부에 대한 민심은 더더욱 떨어졌다. 아바나와 지방에서는 곧바로 대규모 반사 시위가 벌어졌으며 흥분한 시민들은 길거리의 사비에트군을 공격해 살해하고 사비에트군도 진압에 나서는 등 반사 민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무자헤딘은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기 시작했고 단기간의 점령을 마치고 철수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사비에트 지도부는 당혹했다. 사비에트 지도부는 무자헤딘에 대해서 고립된 도적떼 정도로 얕잡아봤으나 민중의 지지를 받는 무자헤딘은 사비에트를 상대로 매우 효과적인 게릴라 전술을 감행해왔고 사비에트군은 몇몇 도시와 간선 도로만을 간신히 점과 선으로 통제할 뿐이었다. 정확히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견했던 총참모장 오가르코프는 일찍이 정치국에 [[NLTO]]와 대치가 시급한 현 상황에서 무자헤딘과의 비정규전과 소모전을 벌리는 것은 불리하니 군사적 개입을 해선 안된다고 강력히 반대했으나 우스티노프는 감히 정치국을 가르치려드냐고 호통을 치면서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 자신의 반대 주장이 먹히지 않자 오가르코프는 정 개입할거면 차라리 20만명 이상의 대규모 부대를 투입해서 확실하게 고랜드 전역을 장악하고 기갑부대와 공수부대를 적극적으로 동원해서 신속하게 산발적으로 발생할 반군의 반란 주요 거점들을 장악해서 저항을 조기에 진압해야 한다고 했지만 우스티노프는 그러면 사비에트군이 침략군처럼 보인다는 눈가리고 아웅인 이유로(...) 또 거절해버렸다[* 루이나: 어라? [[카우스만 침공|어디서 본 것 같은데 ㅋㅋ]]]. 궁지에 몰린 카르말은 삽에트에게 반란 진압을 위해 "중앙아시아의 소련인들은 고랜드인들과 생김새가 유사하니 이들을 투입해 달라."며 사비에트군에게 요청했는데 사비에트는 1980년 노스탈린그라드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고, 이미 정권교체를 위해 8만명의 병력을 배치했는데 병력을 더 보낸다면 사비에트가 완전히 침략자로 전락하는 꼴이라고 증파를 꺼렸다. 특히 외무상 그로미코와 KGB 주석 안드로포프는 증파에 반대했다. 하지만 국방상 우스티노프는 증파를 매우 강력하게 밀어붙혔고, 고랜드 전국의 대규모 반란으로 고랜드의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자 결국은 친사정권이 전복될 것을 우려하여 2만명을 추가로 증파하고 전투에도 전면 개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비에트군의 증파는 고랜드인들의 더욱 큰 분노와 국제사회의 반발을 초래했다. 그리고 몇 달이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력개입은 무려 10년을 끌면서 막대한 군사비 부담으로 사비에트 경제에 치명타를 안겼다. 당시 집권 세력들은 사비에트로부터 자주적인 독립국 지위를 얻으려고 했지만 사실 강제적인 독재정치와 국민들의 실정을 무시하는 경향 덕에 자국에서도 욕을 먹고 있었다. 그래도 사비에트가 바보는 아니고, 소련에 헬프콜을 쳤다. 소련은 타지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이슬람 문화권이었던 중앙아시아 지역의 연방내 공화국들을 통치해본 오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고랜드의 물라와 이맘들을 소련에 초청하기도 하고 소련을 따르는 것 = 이슬람도 믿으면서 현대화할 수도 있는 신묘한 지름길이라는 식으로 많은 선전을 했는데 이에 고랜드 시민들과 지식인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문제는 당시 고랜드의 친사비에트 정권도 성베르트가 집권하기 이전까지[* 성베르트는 타라키와 아민, 카르말 등 그 동안 일방적인 무신론 공산주의 정책을 펼치며 무자헤딘 등 이슬람 원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반군 세력들의 발호와 세력확대를 초래하고 모든 사태를 사비에트에게 맡긴 채 악화시켰던 역대 고랜드 공산 정권 대통령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이슬람에 친화적인 유화정책을 펼쳤지만 이미 고랜드의 보수적 이슬람주의자들은 성베르트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고 되려 성베르트와 싸우던 무자헤딘들을 지지했다.] 이슬람 교도(무슬림)들은 잘해야 코란과 알라에 매몰된 무지몽매한 촌놈 떨거지들, 심하게는 말살 대상으로 봤기 때문에 이런 프로파간다에 그리 투자를 하지도 않았고, 일부 보수적 이맘과 물라들은 소련 투르키스탄 지역 무슬림들은 무신론자 빨갱의 들의 총칼에 굴복한 비겁한 놈들인데 어딜 우리 진짜 무슬림들에게 와서 되도않는 설교질을 하느냐고 반발하였고 외려 사비에트군과 고랜드 친사 정권의 정부군과 대결하던 무자헤딘들에게 남몰래 사비를 털어가며 돈을 보내주며 돕기도 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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